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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청춘여행

임진왜란 3대 대첩의 진주성을 방문하다


경상남도 진주의 남강을 따라 가다보면 과거 임진왜란때 조선의 운명을 지켜낸 진주성이 아직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습니다. 오늘은 진주성의 성벽을 따라 걸으며 한번 그때의 선조들의 발자취를 느껴보는 시간이 되어보도록 하죠. 



저는 잘 모르겠는데 친구가 가장 잘 찍은 사진같다고 해서 한번 이 사진을 메인으로 올려봅니다. 



진주성은 CNN이 한국에서 가봐야할 곳중 50선에 들어갑니다. 남강과 진주성의 풍광이 조화로이 어우러져 여행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다고 하는데 저는 이제서야 이곳을 방문하네요.



처음에는 진주성내의 지도를 나타낸 줄 알았는데 주변에 위치한 골동품점등을 나타낸 지도였습니다. 과거에는 경매도 활발하게 이루어져 번성했던 거리였다고 하지만 지금은 경매는 진행되고 있지 않고 상거래가 부진한 상태라고 합니다. 



관람요금이 있을거라 예상은 했는데 막상 도착하니 매표시간이 끝나있어 무료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어떤 곳은 매표시간이 끝나면 문도 닫혀있는데 이곳은 문은 항상 열려있어 밤에는 공원삼아 산책을 즐기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았습니다.



촉석루가 있는 곳까지는 800미터이니 진중성벽의 길이가 대충 예상됩니다.



서장대에 올라 바라본 풍경입니다. 이제 막 해가 산속으로 숨어서 하나둘씩 매장들이 불을 밝히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규모는 작았으나 촉석루와 같은 역할을 하는 지휘소였다고 합니다. 확 트인 시야덕에 적들의 움직임을 관측하기 용이했을 것 같습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진주성벽을 따라 걸어가볼게요. 



천자총통이 있었는데 지상에서도 천자총통을 썼었나보네요. 이순신장군님이 왜군의 선박을 구멍내버리기 위해서 주로 바다에서만 쓰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잘못 알고 있었나 봅니다. 



진주성은 전략적으로 지어진 위치가 탁월한 곳에 있던 성이었습니다. 남으로는 강이 있어 강을 통해 성을 공격하기가 쉽지 않았고 성의 서북은 경사가 있었던 언덕때문에 서북도 공략하기가 힘들었습니다. 북문과 동문조차도 가파른 둔덕위에 토성을 쌓아 이 역시도 언덕을 올라야 했기때문에 성을 공략하려다가 활에 맞기 쉽상이었고 사다리를 설치하기도 힘들었습니다. 



물론 꼭 진주성이 방어하기에 좋아서만이 1차 대첩을 버틴 이유가 되진 않습니다. 의병들(곽재우, 최강, 이달등)의 도움이 컸고 당시 전투를 지휘한 김시민장군과 군사, 백성들이 합심한 결과였죠. 이때 김시민 장군은 왜군의 총탄을 맞고 전사를 하였습니다. 결국 모두가 힘을 합친 결과 조선군은 경상우도를 지키고 왜군들의 전라도로의 행군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총 지휘부로 쓰였던 곳으로 안타깝게도 6.25때 소실되었다가 다시 재건된 모습입니다. 



다소 밋밋하게만 보였던 진주교는 밤이 되니 자신이 언제 그랬냐는듯 남강속의 또 하나의 아름다운 다리를 만들어 놓았네요. 



너무 어둡게만 찍혀버려서 보이는 게 희미하네요.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위로 비치는 진주교는 논개를 기리는 뜻으로 다리 아래를 거대한 황동반지로 감쌌다고 합니다.



1차대첩에서 승리했던 진주성은 2차 임진왜란이 일어나 다시 일본군의 대규모의 병력이 진주성을 공략하기 위해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당시 조선군의 병력은 관군과 의병을 합쳐도 왜군의 10분의 1도 안되어 숫적으로 열세였습니다. 게다가 왜군은 1차대첩때의 설욕을 만회하고자 모든 병력과 신무기등을 총 동원하였으니 결국 진주성은 10일간 열심히 싸웠지만 왜군에게 함락되어 모든 백성들도 학살당하고 말았죠...



그러나 왜군들도 진주성을 공략하느라 많은 피해를 입어 동남해안으로 철수할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진주성은 우군의 도움도 없이 결사의 항쟁을 벌였었죠...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었던 전투였지만 선조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지만 누군가는 항상 도망가기에 급급했던 일들은 현재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죠. 그래도 우리는 역사를 알아가고 배워야 조금이라도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는 길이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