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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엔딩 청춘영화

영화로 보는 리스본 여행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

서유럽 포르투갈 리스본











이번에는 리스본을 배경으로 유명한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대해서 써 볼려고 합니다. 우리에게 아주 많이 익숙한 배우인 제레미 아이언스가 주인공으로 출연하셨습니다. 잠깐 나오시지만 반지의제왕의 사루만역을 맡으신 고인이 되신 크리스토퍼 리도 나오십니다. 또 몇몇 익숙한 배우가 눈에 띄긴 하지만 이름까지 다 알기에는 제 영화 취향들과는 다른 영화들에 출연하셔서 관심이 적어 출연자에 대한 소개는 이쯤 하기로 하겠습니다. 



영화는 전반적으로 서정적이며 차분하게 진행됩니다. 조용한 분위기의 영화를 잘 보시지 않으셨다면 흐르듯이 흘러가는 영화를 지루하게 느끼실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한번 이 영화의 매력에 빠지시게 된다면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보게 되는 마력에 빠지실 겁니다. 저의 경우에는 영화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 재차 본 것도 있기도 합니다. 잔잔하면서도 슬픈 듯 하며 격정적으로 들리는 ost도 영화속에 잘 녹아 들어 갔습니다. 엔딩 때 흐르는 ost는 피아노의 건반으로 시작하면서 중반에는 바이올린의 똑같으면서 다른 음색에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했습니다. 



스위스 베른에서 고전 문학을 가르치는 그레고리우스의 유일한 취미는 혼자 체스 두기입니다. 영화 초반부에도 그가 혼자 체스를 두는 장면부터 나오죠. 초반부의 체스 두는 장면은 이 인물의 무료한 일상의 고독함을 나타내주는 부분을 보여주려 한 것 같습니다. 그런 그가 비가 세차게 내리는 어느 날 다리 위에서 자살하려는 듯 한 여인을 구하면서 부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자살하려는 듯 보인 그 여인은 갑자기 동행해도 되겠냐고 묻지만 그레고리우스 또한 약간 당황하지만 허락하게 됩니다. 보는 저도 약간 당황스러웠지만 그녀는 그레고리우스의 교실로 같이 들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여인은 말도 없이 다시 어디론가 사라지죠. 자신의 코트만을 남겨둔 채 떠난 그녀를 그레고리우스는 또 다시 불안한 마음에 다리로 향하지만 그녀는 보이지 않습니다. 코트에는 자신이 자주 가는 서점의 직인이 찍혀있는 저자 아마데우드 프라도의 "언어의 연금술사"라는 책만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삶의 작은 부분으로만 살아갈 수 있다면 나머지에는 무슨 일이 생길까?" 라는  구절을 읽으며 그레고리우스는 서점으로 향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는데 있어서 극히 일부만이 전부인 줄 알고 살고 있다는 말일까요? 그래서 일부를 제외한 더 가치 있는 것들이 있음에도 알지 못함을 안타까워 하는 걸까요...서점의 주인은 여자가 포르투갈 섹션을 찾았고 그 책 또한 찾았는데 책을 보다가 화가 난 듯 했지만 책을 구입하고 서점을 나갔다고 합니다. 책을 뒤적이다가 떨어진 기차표는 리스본이 종착지고 15분후에 떠난다는 서점 주인의 말에 그레고리우스는 급히 기차역으로 떠납니다. 기차역에서도 사라진 여인을 찾다가 출발하는 열차를 보고 망설이던 주인공은 열차에 오르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 살고 있다. 다른 장소에 있거나 이전에 일어난 것들은 과거이다. 그리고 대부분 잊혀진다

"무엇이 일어날 수,일어 나야 하는가.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모든 시간들과 함께 열려있으며 완성되지 않은 자유 안에서 깃털처럼 가벼운 그리고 납처럼 무거운 불확실성 안에서? 소망일까... 마치 꿈같고 향수적인 삶의 그 자리에서 다시 한 번 일어선다는 것이...그리고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 우리를 이렇게 만들어 준 방향으로"

다른 건 모두 잊혀져 가는 현재를 살아가면서 불확실한 미래를 꿈꾸지만 전혀 다른 방향의 지금이 또 만들어진다는 말일까요? 저 같은 사람이 해석하기 난해한 아름다운 언어의 유희의 연속으로 처음 영화를 보게 되면 자꾸 곱씹게 되는 부분이 생겨 여러 번 보게 되는 구절들입니다. 



리스본에 도착한 그레고리우스는 책의 저자를 찾기로 합니다. 그러면서 보여주는 영화의 영상미는 리스본의 풍경들을 화려하진 않지만 은은한 멋을 풍기는 따스함을 잘 표현해 주었습니다. 주인공은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인 프라도의 집을 찾아가게 되고 그의 여동생을 만나게 됩니다. 오직 100권만이 만들어져서 94권만이 세상으로 퍼졌는데 스위스의 베른에서 찾았다고 하니 책이 여행을 했다며 놀라는 여동생입니다. 그리고 프라도는 원래 작가나 철학가가 되려고 했지만 사람들이 아프면 안된다는 생각에 의사가 되었다는 이야길 해줍니다.

나중에 이런 프라도의 소신이 영화의 큰 사건의 영향을 주게 됩니다. 프라도의 이야기는 자세히 듣지 못한채 나가려던 그레고(줄여서 그레고라고 하겠습니다.)에게 하녀로 일하는 듯 한 여인이 프라도를 찾으려면 묘지에 가면 있다는 애길 듣습니다. 



"우리가 장소를 떠날 때 우리가 가버린다고 해도 우리는 거기에 머문다. 거기에 다시 가야만 우리가 다시 찾을 수 있는 우리 안의 물건들이 거기 있다. 어느 장소에 간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에게 여행을 간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아간다. 얼마나 짧은지는 상관 없다. 하지만 스스로에게 여행하는 것은 스스로의 고독을 마주해야만 한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모든 것은 고독의 두려움을 떨처버리기 위한 것이 아닌가? 그게 우리가 왜 삶의 마지막에서 후회할 모든 것들을 포기하는 이유가 아닐까?"

우리는 고독이라는 두려움을 떨쳐버리기 위해 살아가지만 결국엔 그 두려움 하나때문에 모든 것들을 포기하게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해석은 각자가 해석하기 나름이기 때문에 여기 저기 다양한 해석을 들을수록 자신만의 정의가 생기는 것 같습니다. 

프라도의 묘지를 찾게 된 그레고는 "독재가 현실이라면 혁명은 의무이다" 라는 글귀를 읽게 됩니다. 

묘지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레고는 작은 사고로 인해 안경이 깨지게 됩니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질문이다. 사람이 살아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무엇을 달성하고 경험해야 하는지를 결정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죽음에 대한 공포는 설명 될 수 있다. 계획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공포... 만약 우리가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이 확실해 진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갑자기 모르게 된다. 더 이상 전체 삶의 한 부분이 될 수 없다."

사람은 꿈이 있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으로 볼 수도 있는데 막상 죽음이 가까이 다가온다면 그 꿈을 실현 못한다는 좌절감에 빠져버리게 되어 좌절에 빠지게 되죠. 그레고는 새로 안경을 맞추러 간 곳에서 책에 대한 애기를 안경점의 주인인 듯한 여성에게 털어 놓습니다. 

"삶의 진정한 감독관은 사고이다. 잔혹함,동정심,황홀한 매력으로 가득 찬 감독관이다." 감독관이 임의적인 우연과도 같다며 여성과 이번 일들에 대한 대화를 나눕니다. 



"삶의 결정적인 순간은 방향이 영원히 바뀌어질 때 항상 드라마틱하거나 크게 다가오지 않는다. 사실 드라마틱한 삶의 순간들은 가끔씩 믿을 수 없을 만큼 이목을 끌지 않는다. 혁명적인 결과를 펼쳐 놓을 때 그리고 새로운 빛에 비춰진 삶을 확신 시켜줄 때는 조용히 진행된다. 그리고 이 환상적인 침묵 안에 특별한 고결함이 있다." 

우연하게도 안경점의 여성은 프라도를 잘 알고 있던 삼촌의 조카였다. 저항군에 있었다는 그는 프라도를 알고 싶어 하는 그레고와 같이 애기해줄수 있다고 하여 그녀와 같이 요양원에 있는 삼촌을 만나러 가게 됩니다. 포르투갈은 한때 독재의 시대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 독재의 시대에 비밀 경찰들은 저항군들에게 무자비했죠.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그 애기를 가해자든 피해자든 애기하길 꺼려한다고 하네요. 삼촌은 프라도에 대해 신을 믿지 않는 성직자라고 합니다. 그리고 감옥이 자신을 방문하도록 허가해준 유일한 사람이었다고 애기합니다. 특권을 가졌지만 원하지 않을 특권... 하지만 프라도는 그 특권을 이용해 친구를 자주 면회 하러 왔습니다. 삼촌에게서 조지라는 또 다른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그레고는 책에서도 많이 언급이 되었다고 이야기 해줍니다. 그리고 자신을 끔찍하게 고문했던 비밀경찰 멘데즈를 살려준 사람이 프라도 였다고 애기 해줍니다. 원하지 않았던 특권은 이렇게 얻었군요. 



영혼을 나눌 정도로 절친한 친구 사이였던 조지와 프라도는 억압적인 독재에 혁명의 의지를 가지게 되죠. 그리고 성당에서 판사인 아버지와 가족들과 다른 수십명의 사람들이 모였을 때 독재에 저항할수 있는 자유에 대해 연설을 하기도 합니다. 프라도는 젊은 나이에 동맥류로 혁명의 날에 사망하게 됩니다. 



프라도가 어느 날 시민들에게 맞아 죽을 뻔한 악질의 비밀경찰 멘데즈를 살리게 된 건 의사로서의 본분이었죠. 하지만 시민들은 그를 배신자라며 친구였던 조지도 프라도를 멀리 하게 만들었던 계기가 되었습니다. 주앙(삼촌)을 다시 찾아간 그레고는 책에는 언급이 없던 스테파니의 존재에 대해 듣게 됩니다. 멘데즈를 살린 일로 죄책감에 빠져있던 주인공은 조지를 찾아가 저항군에 합류하겠다고 합니다. 거기서 조지와 같은 저항군이자 애인인 스테파니를 만나게 되고 서로 한눈에 반하게 됩니다. 그렇게 둘은 조지 몰래 위험한 사랑에 빠지게 되지만 조지는 둘의 관계를 눈치 채고 질투에 사로 잡혀 버렸습니다. 그리고 비밀경찰이 저항군의 비밀집회에 쳐들어 왔을때 프라도와 스테파니는 우연히 같이 도망을 치게 되고 그걸 본 조지는 질투심에 스테파니를 죽이고자 마음을 먹게 됩니다. 하지만 결국 쏘지는 못한채 총을 프라도에게 내주고 흐느끼며 주저앉고 프라도와 스테파니 둘은 자동차를 타고 떠나게 됩니다.



"어릴 적에는 마치 우리가 불멸인양 살아간다. 불멸의 지식이 우리 주위에서 춤춘다. 간신히 우리 피부에 닿는 찢어지기 쉬운 종이 리본처럼. 언제 우리 삶에서 바뀌게 될까? 언제 그 리본이 결국 우리를 조여올 때까지 더 팽팽해질까?"

그레고는 프라도의 일생을 쫒아 가면서 그의 삶을 존경하게 됐고 자신도 그의 삶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에너지를 느끼게 됩니다. 재미가 없다고 스스로 여겼던 주인공에게 안경점의 여성은 저녁 식사에서 그가 재밌다고 말해줍니다. 그는 전 아내가 떠난 이유가 자신이 지루했기 때문이라고 애기합니다. 헤어지는 차안에서 여성은 그에게 지루하지 않다고 말하죠. 조지에게 모든 이야기를 들은 그는 이제 스위스로 돌아 가려 합니다. 그런 그의 앞에 영화 초반 사라졌던 여성이 그의 숙소에 나타납니다. 그녀의 이름은 "카타리나 멘데즈" 비밀경찰 멘데즈의 손녀였죠. 자신은 할아버지를 사랑했었지만 우연히 본 그 책에서 할아버지의 자신이 알고 있던 모습과는 다른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지만 지금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래도 살아가야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 같다며 고마웠다고 합니다. 



스테파니가 스페인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주인공은 스위스로 가기 전 안경점의 여성과 같이 스페인으로 향하게 됩니다. 스테파니와 만난 그레고는 도망쳤던 그 차 안에서 프라도에게 자신이 해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원한다는 말을 건네며 자신은 그것을 감당할 수 없다며 이별을 고합니다.  그가 원했던 여행은 자신이 아니라 그의 영혼으로 향하는 거였다는 걸 안거죠. 그러나 자신이 이별을 고한 것이 프라도에게 죽음을 안겨주었다는 죄책감을 지금까지도 안고 살아왔지만 그가 원래 동맥류를 앓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죠. 



"우리가 장소를 떠날 때 우리 스스로의 뭔가를 뒤에 남기고 간다. 우리가 가버린다고 해도 우리는 거기에 머문다. 거기에 다시 가야만 우리가 다시 찾을 수 있는 우리 안의 물건들이 거기 있다. 어느 장소에 간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에게 여행을 간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삶을 살아간다. 얼마나 짧은지는 상관 없다."

조지는 아직도 프라도가 선물해주었던 약국에서 밤에도 항상 불을 켜놓으며 프라도를 생각합니다. 주앙은 감옥과도 닮은 요양원에서 그레고를 만나 자신의 침묵을 깨뜨리며 요양원에서 금기인 담배도 얻어 피며 스테파니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고 안도하며 조지에게 총을 건네주었던 그 후회스러웠던 과거를 떨쳐내봅니다. 

  


다시 스위스로 돌아가려는 주인공은 지루하지 않다고 말해줘서 그녀에게 고맙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은 활력이나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고... 하지만 그녀는 결국 모두를 조각내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살아났지 않냐고 반문하는 주인공 그러면서 자신의 삶은 어디 있을까라고 물읍니다. 지난 며칠간을 제외한다는 말과 함께 떠나는 그에게 그녀는 묻습니다. 왜 그냥 머무르지 않느냐며... 

그리고 영화는 끝납니다. 



영화는 끝 맺음 나지 않았던 과거를 당사자들이 아닌 타인이 끝 맺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지난 과거를 들추거나 일깨운다는 건... 한이라고 해야 하는지... 잊은 줄 알았던 감정과 지운 줄 알았었던 기억들이 다시 들추이고 싶지 않았지만 해결해야만 했던 기억과 감정들이 주인공에 의해서 풀어지는 과정들이 안타까우면서 무언가가 해결된 느낌을 주어 뭔지 모를 감정들로 채워졌습니다. 



그레고는 프라도의 삶을 갈망하면서 왜 다시 돌아가려 했을까요? 왜 또 다시 지루한 삶으로 돌아가는 걸 선택했을 까요? 돌아온다고 다시 방문한다고 했지만 그는 다시 그 삶으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그들의 삶을 동경하지만 변화를 두려워 했기에 떠나려 했지만 그녀는 그에게 왜 머무르지 않으냐 물으며 변화하기를 바라며 먼저 손을 내밀었습니다. 영화는 관객들에게도 그레고리우스에게 묻듯이 똑같이 묻는 것 같습니다. 너희들도 변화를 바라면서도 여전히 변화를 두려워하느냐고...



우리는 삶의 일부분만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부분이 전부인줄 알고 살아갑니다. 

전부를 선택 할 수 있음에도 두려워 하기에 선택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용기 내어 선택하게 된다면 그 대가는 전부를 안겨 줄 것입니다. 

변화를 두려워 하지 마세요.